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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업,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영업

 

영업이라고 하면 아직도 접대, 친분, 방문, 말빨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방식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도 많다.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분명 영업의 한 방식이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조금 달랐다.

나는 고객과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보다, 고객이 업무에서 막힌 부분을 정리하고 다음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대 회사

고객과 나는 처음부터 사람 대 사람으로만 만나는 게 아니다. 대부분 회사 대 회사로서 만난다.

물론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담당자의 성향도 중요하고, 관계도 중요하고, 대화가 편한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관계의 시작점은 어디까지나 업무다.

 

고객이 원하는 건 보통 단순하다.

이런 솔루션이 필요하다. 기존 제품이 잘 안 된다. 이 소재에 맞는 제품이 필요하다. 공정 조건이 이런데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료를 봐도 판단이 안 된다.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고객과 친해지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정보를 다시 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정은 어떤지, 피착면은 무엇인지, 온도 조건은 어떤지, 하중은 어떤 방향으로 걸리는지, 고객이 실제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영업은 고객이 원하는 답을 바로 던지는 일이 아니라, 답을 내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먼저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접대? 대응?

 나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이었다.

같이 업무를 하면서도 너무 무서웠던 고객들도, 나중에 같이 술 한잔 하게 될 때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재미도 있었고 서로 형 동생이 되기도 하고 나름 즐거운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 관계들이 쌓여 매출로 이어진 경우들도 있고, 사람들이 먼저 내 소식을 궁금해 안부전화를 할 때도 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이런 분위기들을 휩쓸어 나갔고, 나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관리적인 느낌의 술자리 외에 "첫" 술자리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객도 많이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술자리가 확연히 줄어든 어느 날,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도 고객하고 저녁에 술자리도 좀 하고 해라. 막상 말 꺼내기가 어려워 그렇지 너도 재미를 느낄거다."

  

고집스럽게도, 지금의 내가 원하는 영업은 더 이상 그쪽이 아니다.

고객이 나를 개인적인 엔터테인먼트 거리로 받아들이고, 같이 어울리고, 그 덕분에 회사를 움직여 구매까지 이어지는 그림. 그런 방식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고객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했을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고객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내부에서 공유할 수 있는 자료를 받고, 다음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영업의 중심에 더 가깝다.


작은 요청들

영업을 하다 보면 작은 요청이 많다.

샘플 하나, 자료 하나, 단가 확인 하나, 당장 금액으로 보면 별것 아닌 건도 많다.

회사 입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말할 수 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나 또한 회사에서 사용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모든 요청에 같은 에너지를 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나는 작은 요청을 너무 쉽게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 작은 요청이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다른 분들은 대응 자체를 잘 안 해주시는데, 그래도 매번 대응해 주셔서 계속 여쭤보게 되네요.”

이 말은 사실 이중적이다. 아무도 안 해주는 자잘한 요청이 나에게 계속 오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당장 큰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일들이 계속 쌓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작은 대응이 고객이 나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작은 건이 반드시 큰 건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회가 생겼을 때 다시 생각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그건 못 해요.” “그 정도 작은 건은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대답하면 언젠가는 잊힌다. 반대로 작더라도 계속 답을 주는 사람은 남는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 쪽에 가깝다.


여러 스타일의 영업

사실 영업에는 여러 스타일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으로 치면 탱커와 원거리 딜러의 조합에 가깝다. 누군가는 앞에서 먼저 문을 열고 관계를 만든다. 누군가는 한발짝 뒤에서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내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실무를 정확하게 처리한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오래 가기 어렵다.

 

최전방에서 고객을 만나고, 아직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첫 접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자주 찾아가고, 관계를 넓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타입이다. 이런 사람은 분명 조직에 필요하다. 새로운 거래는 결국 누군가가 먼저 문을 두드려야 시작된다.

 

반대로 열린 기회를 실제 업무로 구체화하는 타입도 필요하다.

고객이 던진 요구사항을 내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고, 견적·공문·기술자료·시스템 입력 같은 실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덜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거래를 굴러가게 만드는 데는 이런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대기업과 거래할 때는 이런 일이 더 많아진다. 고객사 자체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보조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많다. 견적서, 사양서, 납기 확인, 거래 관련 문서, 품질 자료, 기술 자료처럼 챙겨야 할 것들이 계속 생긴다. 제품 하나를 제안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제품이 고객 내부에서 검토되고, 승인되고,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수많은 작은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나는 아마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최전방에서 거칠게 문을 여는 사람이라기보다, 열린 기회를 실제 업무로 연결하고, 고객과 내부 조직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쪽에 더 강점이 있다. 고객에게는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주고, 내부에는 처리 가능한 언어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맞춤형 영업은 그런 일에 가깝다.

 

그래서 공격적인 영업과 맞춤형 영업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둘 다 필요하다. 다만 사람마다 더 잘 맞는 역할이 있고, 나는 관계를 크게 벌리는 쪽보다 관계 안에서 일을 정확히 굴러가게 만드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나는 일반론적인 잣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에 맞춰 움직이는 쪽이 더 편했다.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보는 건 같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내부 영업

B2B 영업은 고객만 보고 움직인다고 끝나지 않는다. 내부 조직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

예전에 제조사에서 일할 때는 연구소, 생산, 자재 쪽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눴고, 필요하면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고객에게 양보할 수 있는 건 양보하고, 내부 사정상 어려운 건 고객과 조율했다.

 

무조건 고객이 우선이라는 식으로 일하지는 않았다. 내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그대로 밀어붙이면, 다음 중요한 일에서 협조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고객에게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따를 때도 있었다. 반대로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내부에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했다.

 

내 기억에는 정말 중요한 일에서 내부가 나를 외면한 적은 없었다.

제품에 대해 연구소에 집요하게 물어보기도 하고, 품질팀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그들은 나에게 잘 설명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

바깥으로는 납기도 우선순위에 따라 조율했고, 심각한 문제는 결국 내부 협업으로 풀어냈다. 그때 느꼈다. 내부 영업도 영업의 하나다.


서류는 회사의 얼굴

서류를 잘 만들었다는 말을 고객에게 직접 들은 적은 많지 않다. 원래 그런 칭찬은 잘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견적서, 공문, 회사소개서 같은 문서가 회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회사에서 쓰는 공문과 견적서 양식은 내가 만든 형태를 기반으로 쓰고 있다. 대단한 성과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문서 하나에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서에는 양식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가 표방하는 느낌, 이미지가 일관성 있게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문서가, 양식이 제각각일 때, 우리 회사의 구성원이 전부 제각각이겠구나, 그런 이미지를 주게 된다.

앞서 말했듯 아무도 피드백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난 그들의 무의식 속에 우리 회사라는 브랜드가 남길 바란다.

 

고객이 문서를 받았을 때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 공유가 가능해야 하고, 다음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보기 좋게 만드는 건 꾸미는 일이 아니다. 고객의 판단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나는 내가 보내는 서류가 미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객과 친구가 되기보다는 필요한 사람

나는 회사 밖에서 고객과 사적인 친분을 깊게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이 고객을 가볍게 본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업무 안에서 더 정확하고, 더 성실하고,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고객과 친구가 되는 것보다, 필요할 때 다시 떠오르는 사람이 되는 것. 서로 적당한 격식을 차릴 수 있는 사이.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그쪽에 더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영업

길게 주절주절 쓰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결코 고객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먼저가 아니다.

고객의 업무 갈증을 해소하고,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내부 조직과 조율해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일에 가깝다.

 

말빨보다 경청이 중요했고, 친분보다 업무 신뢰가 중요했다.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상대의 성향과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쪽이 나에게 맞았다.

 

물론 이 방식이 언제나 효율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작은 요청을 계속 챙기다 보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당장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일도 많다. 회사가 원하는 선택과 집중과 충돌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방식이 결국 신뢰를 남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영업을 오래 하려면, 적어도 내가 믿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본 글은 개인적인 영업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정리한 커리어 기록이다. 특정 회사, 고객사,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한 글이 아니며, 영업 방식은 산업군과 조직, 고객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